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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구간(우리금융길)

코스 지역 거리 소요시간 난이도
코스 55구간(우리금융길) : 중섬마을 - 전치마을 - 한티재 - 막금마을 - 누금마을 - 내앞마을 - 구미마을 - 성류굴입구 - 망양정해수욕장
지역 울진
거리 20km
소요시간 7시간
난이도 2등급

세부코스정보

55구간(우리금융길) - 거리, 소요시간 등
세부코스 거리 소요시간 비고
55구간(우리금융길) 중섬마을 - 전치마을 1.6km
전치마을 - 한티재 3.3km
한티재 - 막금마을 4.4km
막금마을 - 누금마을 1.0km
누금마을 - 내앞마을 3.1km
내앞마을 - 구미마을 1.6km
구미마을 - 성류굴입구 1.3km
성류굴입구 - 망양정해수욕장 3.7km

주요지점

망양정 정자
망양정

망양정은 고려 시대에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허물어진 것을 1471년(조선 성종 2) 평해 군수 채신보가 현종산 남쪽 기슭에 옮겨 놓았다. 1517년(조선 중종 12)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어 다음해에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군수 김세우와 협의하여 중수하였고 1590년(조선 선조 23) 평해군수 고경조가 다시 중수하였으나 허물어졌다. 세월이 오래되어 방치될 때 1854년(조선 철종 5)에 울진현령 신재원이 망양정을 이축할 것을 향회에 발문해 둔산 해안봉에 장소를 정하였으나, 재정이 부족하여 추진하지 못하다가 1860년(조선 철종 11)윤 3월 6일에, 울진현령 이희호가 정자가 오랫동안 무너진 것을 한탄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그 이름하였다. 그 후 정자가 퇴락되어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7년에 울진군 및 울진교육청의 보조금과 여러 사람들이 목재 기증으로 1958년에 중건하였다. 이후 다시 낡고 기울어진 것을 울진군에서 여러 차례 보수하여 유지해 오던 것이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해체 하고 새로 지었다. 특히 조선 숙종임금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 하여 ‘關東第一樓(관동제일 루)’란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망양정의 절경은 읊은 유명한 시와 글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정추 김시습의 시,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등 다수가 전해오며, 그림으 로는 정선(鄭敾)의「백납병(百納屛)」,「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에 있는 망양정 도(望洋亭圖)가 유명하다.

왕피천
왕피천

왕피천의 길이는 60.95㎞이고, 유역 면적은 514.001㎢인 지방 1급 하천이다. 수비면 신원리·오기리·발리리 등을 지나면서 장수포천(長水浦川)이 되어 북동쪽으로 흐르고, 수하리에 이르러 통고산(通古山, 1,067m) 남쪽사면을 흘러 여러 수계를 묶어 흐르는 신암천(新巖川)을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울진군, 양양군 등 2개군 1개읍 4개면을 포함한다. 왕피천이라는 이름은 울진군 서면 왕피리 부근에서 심한 곡류를 하고, 통고산 동쪽사면을 흘러 동쪽으로 흐르는 수계를 합류하여 왕피리 한천마을에서부터 왕피천이라 불린다. 옛날 실직국(悉直國) 왕이 피난왔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왕피리,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을 왕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망양정 정자
성류굴(聖留窟)

성류굴은 '선유굴(仙遊窟)' ‘탱천굴’ ‘장천굴(掌天窟)’이란 이름으로도 불렀다. 성류굴은 기묘한 석회암들이 마치 금강산을 보는 듯하여 ‘지하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2억 5천만의 연륜이 쌓인 동굴로 추정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총연장 870m 정도 뚫어져 있다. 최대 광장은 폭 18m, 길이 25m, 높이 40m이며 수심은 대개 4-20m이고 온도는 15~17℃로 연중 거의 변화가 없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가 수도했으며, 고려 말에 이곡(李穀)의「관동유기」, 매월당(梅月堂)의 시, 김창흡(金昌翕)의 기문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우리지역에서는 자연과 역사문화의 보물이다. 1963년 5월 7일 동굴입구 절벽의 측백나무(수령 1,000여년)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 155호로 지정되었으며 1966년 4월 2일 군유재산을 취득하였다. 1967년 3월 3일 동굴을 공개하고 민간 위탁 관리를 실시했다. 1976년 1월 1일부터 울진군이 직영 관리를 하고, 1977년 6월 11일에 울진군 성류굴 관리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사실 성류굴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굴을 방문했다는 기록을 보아 그 전부터 지역에서는 이 굴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굴 내부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행곡리 처진소나무
행곡리 처진소나무

울진 행곡리 소나무는 1999년 4월 6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매우 희귀한 소나무로 수령이 약 300년 정도 되며, 높이 15m, 가슴 높이 둘레 2m, 뿌리목 둘레 3.2m, 가지 길이 동서 15.5m, 남북으로 15m, 그리고 가지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어 전체적인 형태는 속리산의 정이품송에 닮았다.
이 소나무의 수형은 처진 우산형으로 가지가 가늘고 길어서 아래로 늘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유사하다) 이 소나무는 마을이 형성될 때 심은 것으로 전해지며, 마을의 상징적인 나무로 보호 받고 있다.
소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솔, 소나무, 송목(淞木) 또는 소오리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나무껍질은 붉은 갈색으로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다. 꽃은 4월 하순부터 5월 상순에 핀다.
당초 이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1960년 이후 주변의 소나무는 끊어졌지만, 이 소나무는 수형이 아름답고 모양이 특이해서 보호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409호이다.
이 소나무는 36번의 국도변에 있어 불영계곡을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여름에는 지역주민들의 쉼터로도 이용되고 있다.

막금 성황당
막금 성황당

막금 성황당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 있는 성황신을 모신 신당이다.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 골슬레이트 집으로, 외부에 단청이 남아 있다. 당집은 1961년에 건립되었다.
수곡리 막금 성황당과 관련 있는 설화가 있는데, 약 300년 전 강원도 관찰사가 동태령을 넘기 위하여 성황당 앞을 지나던 중 말이 움직이지 않자 말에서 내려 성황당에 절을 하고 출발하였다고 한다.

불영계곡
불영계곡

총길이 15㎞에 이르는 장대한 계곡으로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서면 하원리까지 이어진다. 1979년 12월 명승, 1983년 10월 군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왕피천(王避川)의 지류인 광천(光川)이 심한 감입곡류를 하면서 생긴 계곡으로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 한 절벽, 깊은 계곡과 푸른 물줄기가 어우러져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동해로 향하던 중 계곡에 어린 오색의 서기를 발견하고 가보니 연못 안에 아홉 마리의 용이 있어 그 용들을 도술로 쫒아내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현재의 불영사라고 전해진다.
한반도 환경의 남방과 북방 한계선이 겹쳐져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이곳은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화려함과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계곡의 원시성, 보드라운 연꽃처럼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는 불영사의 모습이 어우러져 방문하는 이에게 잊기 힘든 추억을 선사한다.